2009/11/19 02:00

네번째 이야기... 사랑을 읽을 준비. 내맘대로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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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축하할 일이군.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야."

 막따른 맥주에 거품이 올라와 얼른 입을 가져다 댔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생때, 우연히 레코드샵에서 같은 CD를 집어든 것이 계기가 되어, 친하게 지내게 되었던 사람이다. 그 CD가 누구의 어떤 CD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얗고 가는 집게 손가락이 나란히 진열되어있던 CD중에 왼쪽을 걸어 꺼내던 모습만큼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그녀가 누구를 만났는지,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그녀가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서로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심각하게 말라있었고, 몸이 좋지 않았고, 눈물이 많았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자기정당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할때,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녀는 오랜시간 만나온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일들로 어긋나서 그녀는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 몇명의 과정을 거쳤지만, 그와의 사랑이 그녀의 인생에서 꽤나 큰 의미로 있었던건지, 아니면 그가 그녀의 인생에 깊은 각인이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어째서지?"
 "그에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하자고 말을 했어요. 하지만 그는 내가 그와 만나고 있던 중에도, 내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하고 있는지를 못느꼈다고 해요. 하지만 잘할 수 있다고 하고, 다시 만나기로 한거라서."
 "음. 그럴수도 있지."
 "어떻게 그럴수가 있죠?"

 그녀는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답을 원하고 있었다.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그녀의 외침에 응답했다.

 "예전에... 한참동안 만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도 그녀에게서 내가 그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었어. 심지어 헤어지고 한참이 자날때까지. 그게 힘들어서, 그녀와 헤어졌어.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았던거야. 내가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을."
 "준비?"
 "음. 입으로 사랑한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였어. 하지만 행동의 작은 것 하나하나에 사랑이 묻어있는걸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거야. 그녀가 하던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있던 '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준비 말이지."
 "..."

 

 그랬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렸었고, 바로 내 눈으로 보이는,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랑을 바랬었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그녀가 보고 싶었고, 수줍게 웃으며 사랑한다 말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었다. 사랑을 주기만 하기에는 지쳤다고, 체념하고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 했을때, 그녀는 너무도 담담하게 반응을 했다.

 "정말?"
 "정말."

 지상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내려오던 지하철 플랫폼 앞의 벤치는 가을에 맞지 않게 차가웠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크지 않은 목소리가 더 시끄러웠다. 짜증이 났고, 그 두 음절이 서로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였다. 그녀의 담담한 반응에 나는 정말로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전날 밤에 스탠드를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몇 번이고 고민을 했었던 말이였지만, 그녀의 반응은 남미의 어딘가에서 비행기가 추락해서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볼때처럼 담담하다 못해 차가웠었다.

 그녀에 헤어지고 얼마 안되어서 감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무엇을 할때마다, 사랑타령을 들었다. 사랑이라는 것의 표현에 굶주려있던 나는 배가 부를때까지 보고, 듣고, 느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자 알았었다. 그건 사랑이 담겨있지 않은 사랑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의식처럼, 습관처럼, 사랑한다 말하는 그 말에는 그녀가 내게 했었던 작은 행동에 담겨있던 사랑보다도 작은 ㅡ 혹은 없는 ㅡ 사랑이였다.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온 날이면, 키가 큰 내 옆에서 까치발을 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 가면, 깍지낀 손의 엄지로 그 손을 놓을때까지 빙글빙글 돌리며 원을 그렸다. 그녀는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선 엘리베이터에서는 내 등뒤로 서서는 왼쪽 손으로 내 등을 느껴지게 지그시 눌렀다. 그녀는 에스컬러이터를 타고 올라갈때면, 그 방향이 어디던지 내 쪽을 바라보며 이동했었다. 그 모든 것들에 그녀의 '사랑'이 묻어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렸었고, 어렸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있었을 '사랑'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사랑'을 간절히 바랬었다.

 "있잖아..."
 "응?"
 "나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잡념이라고 생각해."
 "응."
 "표현해줘."
 "하고 있어."

 2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그녀에게 이야기 했었다. 그때는 무슨 맛인지도 몰랐던 아이리쉬커피의 맛처럼, 그녀가 한 대답조차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커피숍 앞의 사거리는 장마비로 우산만이 가득했었다. 나처럼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던 여름이였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아마도 그도 나처럼 언젠가는 사랑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죠."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건 확신할 수 없죠. 그래서 '아마도'라고 답한 겁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어쩐지 그녀의 다짐에 조금 슬퍼졌다. 그 시절 나는 왜 조금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 사람은 노력을 했을텐데. 나는 왜 조금더 그것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더 기다리지 못했을까. 이제는 서로가 어디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 시절 나를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남은 맥주를 비웠다.

 "아무튼 축하해요. 결과적으로는 다시 만나기로 한거니까."
 "네."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할게요."
 "네."
 "당신은 충분히 사랑스러운 사람이예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그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마세요. 당신도 충분히 좋은 사랑을, 예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예요. 그건 내가 보장할께요. 떳떳하고, 멋지게, 하지만 후회없이 사랑하고 오세요. 서로 이미 끝을 보았고,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니까 쉽지 않겠지만, 당신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네.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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